겨울이야기 외 1편
원무현
아이야 들어볼 테냐
할아버지를 지켜주었던 손전등 앞세워
移葬한 빈 무덤에 둥지 튼 꿩 사냥을 가면
산뽕나무에 걸린 연 꼬리에 鬼氣를 불어넣던 칼바람
돌무덤을 찔러댔지
아 돌 틈 사이로 새나오는 굶어 죽은 아이들의 비명
내 성장의 발목을 삭둑삭둑 잘라갔지
그때 묘지를 떠돌아다니는 공포를 주저앉혔던 것은
겨울이면 먹었던 꿩고기 맛,
어금니를 뚫고 나온 그 맛이
송아지 눈망울처럼 선한 눈에 고이는 순간
죽창은 번쩍! 달빛아래 빛났지
이윽고는 사냥감의 몸통을 관통하고
뜨거운 피가 둥지를 적시면
小寒 大寒 따윈 어느새 저만치 달아났지
작은설이면 할머니는 꿩 만두를 빚고
긴긴 밤은 화롯불을 뒤적이며 핏빛무용담을 캤더랬지
아이야 들리느냐
자욱한 핵먼지 속에서 광선 검을 휘두르며
가상세계를 헤매는 21세기의 아이야 들리느냐
넘어도 넘어도 내리막을 내놓지 않던 고개
보릿고개의 다리를 꺾고 심장을 찔렀던
그 겨울의 생존사
받아쓰기
세상은 아직도
어른이 다된 나를 받아쓰기 시간 속에 묶어둔다
이젠 사전 한 구석에서
읽혀지지 않은 채 버려진 에로스, 아가페
그것들을 제대로 받아쓸 뿐 아니라
응용도 제법 하는데
백 점을 허락지 않는 낱말 하나 있다
나는 오늘도 받아쓴다
사랑,
받아 쓴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탕
또 사탕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면 더 달콤한
제기랄
오늘도 받아쓰기는 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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