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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의 <술잔을 비우다>외 1편

설정(일산) 2010. 7. 30. 09:23

잔을 비우다 외 1편

김 종 빈

 

하루에도 몇 번씩 온탕에 몸을 씻고

원색의 불빛 아래 호명을 기다린다

오늘은 누구 입술을 얼마쯤 받아내야 하나

 

파장의 불 꺼진 창가 맘 닦고 있는 걸까

쨍그랑, 생을 그어 벗고 싶은 고단함이

유리벽 그 안에 갇혀 파랗게 떨고 있다

 

가다보면 깨지는 것 어디 너 뿐이랴

툭 던진 화두에도 절로 금간 날들이

너와나 야위며 놓은 빛나는 파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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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늦도록 야근을 하고 허둥지둥 돌아오면

만성이 된 아내는 눈인사가 전부다

가만히 지친 어깨로 식은 가슴을 안는다.

 

몇 가지 푸성귀와 된장국에 밥을 먹다

잔털 보송한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파르르 온몸을 떠는 나는 한 마리 벌레

 

오늘도 쫓고 쫓기다 스스로 저문 하루

꽃무늬 이불속 억지 잠을 청하며

그 짠한 꿈길을 밀고 어디만큼 온 걸까

 

온몸이 풀리고 생각조차 바닥날 때 쯤

비로소 가벼워진 신발 끈을 조이고

복사꽃 환하게 올릴 묘목 한그루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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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빈 약력

199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4년 <시조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2001년 제2회 마한문학상 , 2009년 제3회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시집 <순환열차> <냉이꽃>

현) 가람기념사업회 사무처장

 

출처: 스토리문학 2010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