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학/나의 산문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위한 작업(이설야 시인 시집 해설)

설정(일산) 2012. 1. 20. 08:43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한 작업

 

지성찬

 

종이나 천에 각종 색깔로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경우에는 거기에 작은 결점이 있더라고 잘 보이지 않지만,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단색으로 된 경우에는 아주 작은 결점이 있더라도 눈에 잘 보이게 마련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아무런 색상이나 무늬가 없는 그런 상태의 깨끗한 심성으로 태어났지만 사람 속에서 살다보면 거기에 물이 들어서 각종 무늬들이 그 심성에 그려진다. 소위 때가 묻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에 때가 묻는다고 해서 그 바탕을 이루는 근본은 변함이 없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지만 시문학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이고 보면 그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자기의 자화상 내지는 솔직한 고백인 것이 보통이다.

이설야 시인의 시를 통해서 본 이 시인의 마음의 결은 매우 섬세하고 따듯한 여성적 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작품「수채화로 그린 여인」에서 보면 그 시적표현은 예리한 눈빛으로 포착한 영상을 가슴으로 느껴서 얻은 영상을 고성능 감광지感光紙에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늘의 날씨가 화분용 스프레이보다 가는 이슬비 날이라고 밤색 체크무늬에 연블루 와이셔츠 단추를 끼워주며 일상에 늘 만나는 사람이라도 처음 대하는 무명초처럼 접하라는 다향茶香 같은 말 한 마디를 마지막 단추에 끼워주는 여자”(「수채화로 그린 여인」중 일부)라는 대목에서 그의 예민한 감성을 만나게 된다.

그의 작품「없음으로 영원히 있는 사람」을 보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이 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나만이 찾을 수 있는 그 별 하나!

그 별 이름 美花별!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더 가까이 있고

이 세상에 없음으로 영원히 같이 있는 사람!

한 발 한 발 그대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나

(「없음으로 영원히 있는 사람」중 하단 일부)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픈 이별로 인해서 그에게 닥친 아픔들이 그의 작품 「빨래방망이」「살충등殺蟲燈」「못」「뼈의 말씀」「폐타이어」등에 잘 나타나 있다.

 

뜨거운 불에 데이고

무시무시한 해머에 두들겨 맞고

하나의 못이 되었을 때는

날씬하고 피부도 고왔건만

허름한 집 서까래에

모질게 대가리를 망치로 얻어맞고

피 같은 녹을 온 몸에 두르고 있다

(「못」의 하단 부분)

 

이 글에서 보면 ‘불에 데이고’ ‘두들겨 맞고’ ‘녹을 온 몸에 두르고’ 등이 주는 의미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모든 고통의 대명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철광석에서 순도가 높은 선철을 얻기 위해서는 고열로 철광석을 용해하여 쇠와 돌을 분리시켜야만 선철을 얻을 수 있다. 인생에서도 보면 이런 고통을 통해서 인생을 깨우치고 그런 깨우침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과속에 급브레이크

때론, 펑크가 나면서까지

험하고도 긴 길 위에다

제 생명을 풀어놓던 타이어

 

어느새 폐타이어되어

간이역 플랫폼에서

가슴에 팬지꽃을 한 아름 껴안고

말년을 조용히 보내고 있구나

 

전에 재대로 볼 틈 없던

하늘과 교감하며

(「폐타이어」전문)

 

사회생활의 연속적 파탄으로 인하여 자학적 자괴감에 빠진 이 시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생로병사’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자연법칙이니 이 시인에게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꽃이 피어있는 나무가 꺾어질 때, 거기에 핀 꽃은 시들어 떨어지지만 뿌리가 붙어있는 나무에서는 새로운 싹이 돋아나서 새로운 가지를 형성하며 성장하여

나무를 나무답게 이루어나간다.

그의 작품 「꽃(68)」에서 보면 ‘아프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자기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아픔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아기를 출산할 수 없고 힘든 역정을 거치지 않고 높은 정상을 밟을 수 없듯이 말이다.

이런 인생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처신하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겸손하고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늠할 수도 없는 세월 건너

언제 또 구름의 세포로나 돋아

쓸쓸한 비의 행렬에 섞여 추락하다

다행히 연 잎에라도 맺혀

한 송이 연꽃이라도 된다면’

(「빗방울 하나」의 하단부)

위의 시에서 보면 불교의 윤회설에 근거한 그의 신앙적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이 시인은 내세에 대한 소망을 이 시에 담고 있다. 자기의 미약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 실존적 자아모습을 잘 파악하고 확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건너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을 매우 기쁜 일이다.

그의 겸손한 삶의 자세를 통해서 성숙해져 가는 그의 인격을 알 수 있다.

「산으로 오르는 눈길」에서 보면 ‘정결치도 못한 내 발자국이 순백한 산길을 더럽힐까 싶어’ ‘감히 산에 오르지 못하고 그만 발길을 돌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새잎」에서 보면 ‘한 잎 사철나무 새잎처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은 생에 대한 강열한 집념과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어찌 보면 평생 동안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동기와 용기를 가져오고 인생을 발전시키고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우리에게 꿈을 갖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 시인의 인생에서 항시 새로운 잎이 피고, 또 아름다운 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오고 새가 놀러오는 그런 꽃밭을 이루어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